ANGEL BONA

커피는 어디서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고 지금까지 이렇게 먼 시간을 함께 해온것일까

커피의 역사

  • 커피 품종 및 재배

    브라질 (2007년 기준 2,249,010톤 생산 - 세계 1위 생산량)
    + 브라질 커피는 전 세계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대 커피 재배 국가로 브라질 남중부, 남서부 지역에 대부분 자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커피로는 산토스와 보르본이 있습니다.
    + 주요산지 : 미나스 제라이스, 상파울루, 에스피리투 산토, 파라나
    + 대표커피 : 버본 산토스, 몬테 알레그레, 카페 리오테

    베트남 (2007년 기준 961,200톤 생산 - 세계 2위 생산량)
    + 베트남 커피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 2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생산량 대비 커피의 품질이 떨어져 국제시장에서 가격 하락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 가운데 97%는 인스턴트 커피에 널리 쓰이는 로부스타종이며 500~700m 지대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 주요산지 : DakLak, Gia Lai, Dong Nai
    + 대표커피 : 로부스타

    콜롬비아 (2007년 기준693,377톤 생산 - 세계 3위 생산량)
    + 콜롬비아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12%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3위 커피 생산량으로, 대부분 고지대에서 소작농으로 재배되어 고급 커피로 콜롬비아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콜롬비아 커피는 워시드 커피(Washed Coffee)인 마일드 커피의 수프리모(Supremo)와 엑셀소(Excelso)가, 유명합니다.
    품질면에서 보면 콜롬비아는 단연 1위를 자랑합니다.

    Coffee Zone or Coffee Belt

    세계인이 즐기는 차(음료)로 발전하고 있는 커피의 생산은 커피 벨트라고 해서 남위25˚C ~ 북위25˚C 사이의 아열대지역을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60여개국에서 커피가 생산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 중급 이상의 '아라비카(Arabica)종'이 생산되고,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은 '로부스타(Robusta)종'이 생산되고 있으며,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소량의 '아라비카(Arabica)종'을 생산하여 최상급의 커피로 인정받는 품종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커피는 연간 강우량 1,500~2,000mm, 연평균 기온은 15˚C~25˚C, 서리 및 냉해가 없는 기후에 배수가 우수하고, 기름진 약산성 토양에 장시간 햇빛에 직접 노출이 되지 않는 곳에서 잘 자라며, 높은 지대일 수록 알(커피체리)이 단단하고 맛이 풍부한 질 좋은 커피가 자라게 됩니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기후적으로 열대성 강우량이 많아야 하는데 이런 지역은 보통 우기와 건기가 뚜렷해 우기에는 커피가 자라는데 적당한 비가 충분히 내리지만 건기에는 날씨가 따뜻한 반면 습도가 낮아 건조해지기 쉬운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커피 재배지는 고원, 특히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는 경사지가 좋은데 실제로 커피의 주 생산지가 해발 1,500~2000m의 고산지대입니다. 이와 달리 1,000m 내외의 저지대 평지에서는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커피 나무가 심어진 곳마다 일정한 비율로 잎이 크고 넓은 바나나 나무와 기타 다른 Shade Tree (그늘 경작용 나무)를 심는 혼합재배 방식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커피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지나치게 강한 햇볕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저지대의 차가운 공기와 서리를 방지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커피가 생산되는 아시아(인도, 인도네시아, 아라비아, 파퓨아뉴기니 등), 중남미(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자메이카 등), 아프리카(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등) 각 지역을 보면 공통적으로 열대 또는 아열대 기후입니다. 이런 지역이야말로 커피 재배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후나 토양조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위도 상으로 보면 남위 25˚C~북위25˚C 사이의 지역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처럼 커피는 환경에 민감해 지도를 펴놓고 보면 재배지역이 일정한 띠를 형성하고 있어 이를 흔히들 '커피 벨트(Coffee Belt)' 또는 '커피존(Coffee Zone)'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Fresh Bean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70%는 생두가 차지한다는 것은 커피를 공부하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생두의 기준은 색상은 짙은 청옥이며, 생두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고 있는 수분 함량이 적어져 점점 탈색되면서 점차 누르스름한 색으로 변하게 되며, 갈색으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생두의 색상은 Green ~ Yellow까지 5~10년 그리고 갈색까지 변색되는데 10년 정도가 소요됩니다. 하지만 모든 생두가 그렇게 반응하는것은 물론 아니며, 조밀도에 의해 변화하는 속도 또한 달라집니다. 생두는 결점두가 적고 크기가 균일하며, 그리고 크기가 클수록 고지대 생두가 많으며, 고지대 커피는 생두입자가 치밀하고 밀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퀼리티 높은 품질로써, 세계인에게 좋은 평가와 선호도 높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커피의 품종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한번 더 제대로 짚고 넘어가자면 2000년 이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즐겨 마시던 봉지커피, 지금은 우유를 넣어도 향기가 좋은 커피, 카제인 나트륨이 없다는 커피 모두 눈치 채셨겠지만 인스턴트 커피입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커피 품종과 스페셜 원두커피의 재료가 되는 품종과 콜드 브루 커피의 재료가 되는 커피 나무의 품종은 전혀 다른 품종이며, 전혀 다른 기후, 전혀 다른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베트남은 세계 제2위의 커피 생산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어떤 커피를 생산할까요? 바로 로부스타 커피 품종 카네포라를 심고 수확해서 가공, 포장, 수츨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중남미 최고의 커피산지 콜롬비아나 중남미의 '에덴동산' 코스타리카 같은 경우 국가 차원에서 커피 산업을 육성 및 장려하고 철저히 관리, 감독하며 법으로 로부스타 품종의 커피 나무의 경작을 금지했습니다. 커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이니 만큼 친환경적인 가공 방법인 '에코 프로세서'를 도입하여 가공하는 농장들이 현재는 더욱 늘어가고 있습니다.

    Coffee Cultivation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커피나무는 씨를 뿌려 묘목을 길러냅니다. 모판을 만들어 씨를 뿌리면 2개월 쯤 뒤에 싹이 나오며, 8개월 쯤 지나면 흙을 담은 조그마한 상자나 비닐 봉지에 묘목을 옮기는데, 이 같은 이종과정을 두번정도 거쳐 최종 경작지인 커피농장에 심어지게 됩니다. 이식된 커피나무는 3년 내지 4년 정도 지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상품화가 가능한 성숙된 열매를 수확하려면 5년 이상 자라야 합니다. 봄에 핀 커피 꽃은 바람이나 곤충에 의해 수정된 뒤 흙녹색의 열매를 맺으며 9개월 정도 지나면 붉게 익어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커피나무는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 둘 경우 6~10m(종에 따라 다릅니다.)까지 자라지만 알찬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대략 2m 크기로 전지합니다. 5년이 지난 성숙된 커피나무는 그 후 20년 동안 수확이 가능하며, 한 그루당 2,000개 정도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데, 이는 가공된 커피 500g에 해당되는 양 입니다. 고산지대의 비탈에서 재배되는 커피 열매는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채취해야 합니다.

    반면 평지의 경우에는 트랙터와 같은 커피 수확기계가 고랑 사이를 지나며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내는데 이 경우 채 익지 않은 열매가 떨어지기도 해서 효율성은 있지만 품질은 아래도 떨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이와같은 방법으로 수확하는 곳이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은 세계 제 1위 커피 생산국으로 거의 모든 농장이 기계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많은 양을 수확하는 만큼 커피 가격도 평가 절하된 점이 없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남미 커피 생산국 중 콜롬비아를 빼 놓으면 섭섭할 만큼 많은 생산량을 차지하는 만큼 콜롬비아는 농부가 많은 고생을 하는 유기농 농장이 많습니다. 콜롬비아 중서부 리사랄다의 주도인 페라이라(Pereira)와 북쪽의 마니살레스(Manizales) 지역은 콜롬비아 내에서도 가장 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는 곳으로 꼽힙니다.

    이 나라의 커피 산업을 주도하는 커피 산지인 이곳은 안데스 고원의 온화한 기후, 연간 100mm 이상의 강우량, 화산재가 퇴적되어 형성된 비옥한 대지 등 그야말로 기후적 요소와 토양에 민감한 커피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커피는 재배지의 기후조건이 좋을 수록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익어감으로써 특유의 맛과 향이 더욱 진하고 풍부해 집니다. 오늘날 다양한 품종이 개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원두의 맛이 어디에서 생산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커피가 자라는 과정을 살펴보면 위와 같습니다.)

    The Process of Growing Coffee

    커피의 성장 과정 정리

     1. 비옥한 흙과 비료를 섞어 묘판을 만들고 내피상태의 커피종자를 뿌립니다. 종자를 2개 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종자를 뿌린 뒤 40~60일 정도 지난 후에 싹이 나옵니다.
     3. 내피가 덮힌 상태에서 줄기가 나옵니다.
     4. 내피를 뚫고 잎이 나옵니다.
     5. 기후, 풍토에 따라 다르나 발아하고 나서 20~30일만에 떡잎이 나옵니다.
     6. 종자를 파종하고 나서 약 5개월 후의 묘목, 종자를 뿌린 후 약 10개월째에 농원으로 이식합니다.
     7. 이식 후 3년 경과한 커피나무는 최초의 꽃이 피고 열매도 조금 열립니다.
     8. 3년째부터 수확이 가능합니다.
     9. 커피꽃은 잎이 붙어 있는 뿌리에 군생해서 개화합니다.
     10. 빨갛게 여문 커피 체리의 과육은 은은한 단맛이 납니다.
     11. 사람이 직접 잘 익은 체리를 한알 한알 손으로 직접 따서 수확합니다.
     12. 과육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세척하여 파치먼트 채 말려서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수분을 날려줍니다.
     13. 탈곡 후 필요한 나라에 공급합니다.

  • Origin of Coffee

    커피(Coffee)의 기원은 대륙과 역사를 뛰어 넘어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어떻게 그 빨갛고 달콤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의 원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커피의 기원과 전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가 얽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커피의 유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전설로는 칼디, 마호메드, 오마르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Legend of Kaldi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칼디의 양치기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우선 알아보자면, 서기 575년경 이디오피아의 한 지방인 '카파 kaffa(Kepa)'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어느날 자신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흥분해서 날뛰는 모습을 보고 이유를 알아보니 어떤 나무의 잎과 열매를 뜯어 먹은 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칼디 자신도 그 열매를 따서 먹어보았다고 합니다.

    칼디는 그 열매가 기운을 돋우고 정신을 오랫동안 맑게 하는 각성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이슬람 사원의 한 수행자가 이곳 카파를 지나다가 칼디를 만나게 되고 칼디는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말하고 그 식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슬람 수행자는 칼디처럼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각성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이 식물의 열매를 수행중인 오랜 기도시간에 잠을 쫓는데 유익하다고 생각해서 동료들과 함께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알게 된 커피라는 음료는 사원에서 사원으로 다시 이디오피아의 전 지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이후 터키(오스만 제국)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3세기에는 커피가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고 또한 약품으로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사회에서는 로마가 폐망하기 전부터 커피는 귀족의 문화였으며, 귀족들의 부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천주교세력이 유럽을 통치(킹 아더)할 무렵 이슬람의 군인들에 의해 전해진 음료가 커피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선 악마의 음료라고 거부했지만 십자군 전쟁 때 지쳐있는 군인에게 진하게 볶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지급하여 약간의 흥분된 상태에서 전쟁을 치루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는 커피. 16세기 말 유럽으로 소개 되어 유럽 여러나라에서 엄청난 문화의 핵으로 도약했고, 마침내 전세계인이 즐기는 기호 음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Legend of Islam Muhammad

    이슬람교의 예언자 마호메드가 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꿈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커피의 나무와 열매를 보여 주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열매를 먹은 마호메드가 병이 나아 40명의 장정을 말에서 떨어뜨리고 40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전설의 열매가 바로 커피(Coffee)입니다.

    커피의 기원중 이슬람 마호메드 전설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얘기가 여러 각도에서 재해석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으며, 또 다른 얘기는 한 도시의 시민들이 이름 모를 역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솔로몬왕에게 커피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이를 마시고 모두 나았다는 기독교적 관점의 얘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Legend of Hadji Omar

    칼디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전설보다 시기가 늦기는 하지만 오마르라는 아라비아 부족장의 전설이 있습니다.
    1258년경 오마르는 스승 샤델리를 따라 아라비아 예멘 모카 지역에 도착하여 기도의 신비한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마침 중병에 걸린 성주의 딸을 치료하게 되면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성주의 미움을 사게 되어 오우삽산(Mt. Ousab)이라는 예멘의 산으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오우삽산에 추방당한 오마르는 배고픔에 못 이겨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열매를 따먹게 되었는데, 여기서 오마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어주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후로 오마르는 그 열매를 사용하여 많은 환자를 구제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결국 그 동안의 죄가 풀려 성자로써 존경받게 되면서 그 때 알게 된 커피라는 음료는 오마르의 전설로 지금까지 커피의 또 다른 기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History of Coffee

    커피는 생물학적인 증거로 볼 때 아프리카의 아니바시아 고원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의 원지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라비카종(Arabica)은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로부스타종(Rubusta)은 서아프리카의 '콩고'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으며,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춤추는 양치기 소년 칼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약 AD 500년 경에 에티오피아에 사는 칼디(Kaldi rheo 아랍어로 "뜨겁다"는 뜻)라는 소년은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난 뒤 흥분하여 춤추듯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의아한 칼디 자신도 그 열매를 직접 먹어본 결과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수도승에게 알리게 되었는데 수도승 또한 이 열매를 먹고 각성효과와 함께 기도 중 졸음이 오지 않아 이를 신기하게 여긴 수도승은 열매를 가져다 동료 수도승들과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이 후 열매를 함께 먹었던 수도승들에 의해 이 열매는 잠을 이겨내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소문은 수피교 수도승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그 뒤로 커피 열매는 잠을 극복하게 해주는 신비한 열매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처음 커피의 쓰임새는 수피교도 수도승 사이에서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도록 하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므로써 커피의 많은 약리작용과 몸에 이로운 성분 중 카페인에 대한 일방적인 광고 효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추후 커피를 알리는 여러가지 성분 중 타 음료나 타 식품에도 많이 들어있는 카페인이 유독 커피에 집중 함유되어 있는것 처럼 오보되는 기 현상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커피의 발견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전설이거나 근대 유럽지역에 커피가 보급되면서 지어진 이야기들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원전부터 아프리카 동부 일대에 커피열매가 존재했으며, 커피나무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 임이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From Africa to Arabia (AD.525 ~ AD.1500)

    커피 전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많은 역사 학자들이 약 6세기를 전후하여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아 남부 예멘 지방을 침략하면서 아라비아 지역으로 퍼져나간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커피가 전파된 이유는 같은 이슬람권인 사라젠 제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 수도승들에게 고행을 극복하고 활기를 주는 신비한 약물로 사용되던 커피는 이슬람 사원의 권하에 포교활동의 수단이 되었으며, 이슬람 세력이 커짐에 따라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던 야생 상태의 커피도 아라비아에서 예멘으로 사람들에 의해 옮겨 심어지고 파종되고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슬람이 전파되는 곳에서 커피도 같이 전파되었고, 그 결과 북아프리카, 지중해 동부 그리고 인도의 이슬람 승려인 '바바부단'에 의해 아시아권의 인도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치 목화씨를 붓 뚜껑 속에 숨겨서 몰래 우리나라에 들어온 묵익점처럼 '바바두단'은 인도에 처음 커피를 가져온 사람입니다.

    이들은 1000년경에 커피를 졸음을 방지해 주는 의미를 가진 Gahwah ('와인'이라는 의미)라고 명명하였으며, 원두를 끓여먹기 시작했으며, 커피 종자의 외부 유출을 금기시 하던 사라센 제국의 엄격한 관리하에 처음에는 날것으로 먹던 커피를 차츰 종자가 발아하지 못하도록 굽거나 쪄서 수출, 운반 되었으며, 이로 인해 커피의 가공법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센 제국이 쇠퇴하면서 11세기 경 커피는 이슬람 사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계 여러나라와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커피가 이슬람교 수도승들에 의해 약용이나 종교 의식 전 후에 주로 사용하던 것이 본격적으로 음료로써 애용받게 된 것은 이슬람 문화 때문이며, 이슬람의 교리 중에는 "늘 깨어 있으라" 라는 말씀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 바 이슬람에서는 술을 마시는것을 금했기 때문에 커피가 문화적인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이는 훗날 약용에 머물던 커피라는 액체가 모든 사람들이 음료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세기까지 종교적으로 마시던 커피가 14세기경 중동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현재의 터키)에 커피가 전파되면서 비로소 원두를 볶은 후에 추출해서 마시는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음료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커피라는 용어는 자체도 터키어(Kahve:터키어로 커피)를 거쳐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도 칭한적이 있으며, 오슬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 커피가 소개되었고, 최초의 커피 하우스인 Kive Han이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Coffee at Europe

    커피가 기독교권에 처음 소개된 것은 십자군 전쟁때로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동안 유럽인들이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8차례의 원정대를 보내 100년 전쟁을 하였으며, 이 때 십자군에 지원한 각 유럽 각지의 사람들은 이슬람 지역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맛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당시에는 충분한 교역을 하지 않은 관계로 입맛만 다시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유럽인들의 예의 주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빼앗고 싶은 그들에게 커피는 천상의 음료이고 악마의 유혹이었으니 말입니다. 1615년 베니스상인 들에 의해서 유럽에 소개될 때까지 그것이 무엇으로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 만큼 아라비아제국 오스만 제국은 철저하게 감독 하였습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슬람문화인 커피가 유행하는 세태에 종교적인 교리를 내세우며 로마교황인 클레멘트 8세에게 커피를 악마의 음료로 칭하여 음용을 자제시켜 줄 것을 탄원하였으나 교황은 뜻밖에도 향기로운 맛과 향에 감탄하며 커피에게 세례를 내리며, 이 음료는 신이 내린 음료라고까지 하여 아직도 악마의 음료라면서 두려움에 떨며 커피를 맛보지 못한 많은 이들이 이를 계기로 커피를 맛보았고 경이로운 음료라는메커니즘을 이루며 유럽 세계에 커피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세기 초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이탈리아에 문을 연 이래 영국에 많은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런던에만 거의 약 2,000여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커피하우스 안에는 계급이 존재 하지 않았으며, 무역상이든 은행가든 부둣가의 노동자든 모두가 다 똑같은 사람이었으며 조금 더 빨리 커피 서비스를 받고 싶은 이들이 1페니씩의 동전을 웨이트레스에게 더 주는 것이 '팁'이라는 문화를 만들으며, 이곳에서는 직업과 빈부의 격차와 태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으며,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배운이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교육의 장이 였고 일부 사람들은 그때의 커피 하우스를 1페니의 '유니버시티'라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17세기 후반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커피 하우스가 혁명의 온상'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 커피하우스들을 펴쇄하기에 이르렀으며, 포고령까지 내렸으나 그 포고령은 11일 만에 대중들의 의해 반대에 부딪혀 발효되기도 전에 철회 되었습니다. 이렇듯 커피는 이도교 음료라는 종교적 박해와 커피하우스에 오랜 시간 남편을 빼앗긴 부인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중속으로 급속히 번져 나갔습니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하우스가 범람하고 커피 소비량이 급격하게 급증하자 공급부족으로 품귀현상까지 발생하였으며, 이때까지만해도 이슬람권에서는 커피의 묘목과 종자의 유출을 금지시켜서 아라비아 지역에서만 재배되었을 뿐만 아니라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유럽의 땅은 적절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16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바바부단(Baba Budan)이라는 인도의 이슬람 승려가 예멘에 성지순례차 왔다가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7알의 커피 씨앗을 인도로 빼내와서 인도 남부 마이소르(Mysore) 지방의 산에 심어서 재배하는데 성공하였고 훗날 '바바부단'이라고 명명된 언덕에서 커피나무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와 무역을 하던 유럽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가 커피벨트 지역에 급속히 진행되며 커피재배가 확산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커피의 상품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커피 거래상들은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이중 재일 먼저 주도권을 잡은 나라는 네덜란드 였습니다. 1616년 네덜란드는 예멘의 모카에서 커피를 홈쳐 암스테르담 식물원에서 재배를 시도 하였으며 당시 막강한 무역강국이던 네델란드 동인도 커피사업을 통해 인도지역에서 커피 농장을 인수하여 직접 경영까지 하였으며, 유럽 제국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커피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1696년에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자바섬으로 커피농장을 확대 하였으며, 이후 수마트라, 셀러베스, 티모르 지역에도 대규모 커피 플랜 테이션을 조성하였습니다. 자체 공급 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항해술로 인한 운송수단도 뛰어 났고 커피상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을 넓허 갔으며, 유럽의 왕실과 귀족계급에 커피나무를 가져다 바치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커피맛에 반하여 이들로부터 왕실에서 마실 전용커피를 수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의 커피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사교장 겸 지식인들의 토론장이었던 커피 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유럽에 바야흐로 커피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임니다.

    1713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암스테르담 시장으로부터 유레이트 조약을 체결한 기념으로 선물 받은 커피 묘목을 파리왕실 식물원에 심게한 후 프랑스령 식민지에 옮겨 심으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는데, 몇년 뒤 1723년 커피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섬 (Martinique Island)에도 커피 나무가 심어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 섬의 젊은 해군 장교 끌리외(Gabrel Mathieu de Clieu)때문으로, 당시 파리에 휴가차 머물고 있던 그는 커피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국왕에게 커피나무를 이식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하자 한 밤중에 몰래 왕실 식물원 담을 넘어 온실에 잠입해서 커피나무의 파종을 가지고 나와버린 일대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커피파종을 손에 넣은 끌리외는 마르트니크로 떠나는 배에 오르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것으로 믿었지만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해적들을 만나 배가 나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며, 폭풍우속에 배와 함께 커피나무와 가라앉을뻔도 하였고, 항해 끝 무렵에는 식수조차 부족하여 식수 배급제를 실시 했는데 끌리외는 그가 배급받은 식수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물을 커피나무 새싹에 쏟아 부어야만 했답니다.

    천신만고 끝에 마르티니크섬에 도착한 그는 엄중한 경계속에 커피 싹을 길렀고, 그 결과 무성하게 자라나 50년 동안 1,920만 그루로 커피나무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이 묘목들이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 커피 역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Origin Brazil Coffee (AD.1727 ~ AD.1800)

    1727년 당시 브라질은 커피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지만, 커피 씨앗을 손에 넣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브라질 총독은 고심끝에 '빨레따(Francisco Melo Palheta)'라는 대령을 커피가 재배되던 프랑스와 네델란드 식민지들이 있던 가이아나로 파견하는데, 표면상의 명목은 국경분쟁을 협의한다는 것이었으나, 가이아나에 도착한 젊은 대령은 요새와도 같은 커피 농장에서 직접 커피 묘목을 훔쳐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잘생긴 외모와 몸에 밴 메너를 이용해 총독의 아내에게 접근하여 총독 부인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적중해 그녀는 마지막 만찬 후 연정의 표시로 남몰래 꽃다발 속에 커피 씨앗과 커피나무 잎파리가 둘러진 꽃다발을 건냈고 대령은 이를 무사히 브라질로 들여오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이 연약한 커피나무 잎파리와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오늘날 세계 1위의 커피 대국인 브라질 커피 역사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1800년 경에는 커피수확이 점점 늘어나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커피가 이제는 매일 하루일과 동안에 몇잔이든 마시게 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Around the World Drink. Coffee (전 세계인의 음료. 커피)

    19세기 중반 무렵 전 세계적으로 병충해가 돌면서 한 때 커피산업 자체가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의 서남 해안지대에서 재배되었던 로부스타종이 새로이 부각되었고, 다양한 품종 계량과 보급 및 커피관련 기술도 한층 발전하여 예전보다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전세계 사람 누구나 즐겨 마시는 보편적인 음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 위치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커피를 재배하게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베트남과 중국의 위난성 지역에 이르기까지 커피 나무는 세계곳곳에 심어지고 있으며, 적도를 중심으로한 커피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커피를 재배하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약 70여개국 이상이며, 직접 간접적으로 커피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만 헤아려도 2,500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격기준으로 볼 때 천연 자원중 원유 다음으로 거래액이 큰 품목으로 전 세계적으로 한 해 천억잔 이상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최대 커피 소비국가인 미국은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이후 차를 대신해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 되었으며, 세계 커피 생산량의 20%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고종 황제께서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때 커피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던 독일인 손탁 여사가 러시아공사관 근처의 정동 구락부라는 한국 최초 커피전문점 및 손탁 호텔까지 운영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커피 보급은 한국전쟁 이 후 미군 PX에서 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한국사회에 보편화 되었으며, 이때의 커피 하우스는 일본의 '다실'이란 어감을 그대로 받아들여 '다방' 이라는 커피 하우스 문화가 생겨 났습니다. 그에 따라 한국은 이상하리만큼 기형적으로 인스턴트 커피시장이 우선적으로 거대해진 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커피 하우스가 생겨난 이후부터 에스프레소 커피 시장으로 차츰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Thinking About Coffee

    커피라는 기호 식품은 과거에는 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으나 현재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식품으로 지구가 태어난 이래 지금처럼 평민이 살기좋은 시절이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참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색깔이 강했다면 카톨릭 문화권으로 이동하면서 전세계인이 향유하는 음료가 되었고,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마케팅의 왕국(STARBUCKS)으로 대변되는 미국에서 최대의 커피 판매처가 되었으니 과거 커피사에 남아 있는 인물들이 이를 알게된다면 땅을 치며 광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Siren from Greek Mythology (사이렌이라는 여신을 섬기는 그리스의 신화에서 나온 여신상을 카피하여 만든 스타벅스 로고)의 의미는 '강력한 집착, 중독, 죽음'을 의미합니다. 커피맛은 Cool할지 모르지만 그 회사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입장은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Cool 하지 않다고 봐야 하며, 이는 현대인과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와 커피 맛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벅스를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커피 하우스로만 봐서는 안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돈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택이고 취향이며 자유다." 라고 주장하기 전에 세계인은 이제 커피 하우스의 선택이 단지 개인적인 취향의 수준을 너머선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이며, STARBUCKS COFFEE는 경제적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입장에서도 비즈니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동성 결혼을 반대하고 전통 결혼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스타벅스 주식을 팔아 치워도 상관없어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구입하지 않거나 마시지 않아도 상관없어 합니다. 스타벅스가 동성 결혼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지하며, 사회 여러 평등에 대한 법안들을 지지하고 대대로 후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스타벅스의 신조와 가치관에 일치하는 것이며, 스타벅스의 목적 중 하나는 다중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들을 수용하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들을 계속 후원하며 지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시대에는 커피라는 식품은 없어서는 안될 주요 식품을 넘어 문화로까지 발전하고 있는데 과거 커피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목숨을 걸고 커피나무를 훔쳐서 보급하고자 노력한 그들의 모습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즐거운 커피 타임을 누릴 수 있을지, 우리의 조상 중에도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의 문익점'은 목화씨를 훔쳐서 후대에 헐벗은 백성을 위해 기여를 했듯이 커피나무를 훔쳐서 그 당시에는 금전적인 이득을 꾀했다면 지금의 후대 보통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혓바닥의 행복'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이 과거 어떤 이의 누구의 드라마 같은 인생의 뜨거웠던 열정으로 시작 되었는지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겨보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커피 전파경로의 파란만장한 여행기를 마칩니다.